2006년 02월 14일
정말 책임감이 있었을까?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우선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라이 따인한 문제로 토론은 좋은데 감정적으로 반응은 서로 자제해 주십시오, 저는 제 블로그에서 싸움이나는 것이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저도 다른 블로그에서 싸움질 하니까요. 그러나 감정적인 반응은 자꾸 얘기가 옆으로 삐딱선을 타게 합니다.
그 베트남의 라이 따이한 문제, 이왕 나온 얘기니까 아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제 경험을 또 끄집어 낼까 합니다.
남자가 외국에서 살면 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전에 한분이 그러시더군요.
"그냥 현지얘 하나 적당히 구해서 살아,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나면 몇푼 주고 해결하면 되지 뭘 그래, 남자가 해외에 살면 그 정도는 여자들도 다 이해해... 총각이 그럴수도 있지..."
그런데 이런 충고(?)를 해 주신 분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월남에만 버려진 아이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카르타 인근에 땅그랑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자카르타의 위성도시인데, 과거 인도네시아로 한국의 신발,섬유,봉재 공장들이 이전 할 때 주로 이곳으로 이전해서 지금도 교민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이미 80년대 부터 이곳으로 한국의 섬유,신발업체들이 이전을 했었습니다.
초기에는 기술자들이 단신으로 부임했습니다. 공장에 직원들에게 기술지도를 해주기 위해 많을 때는 한 공장에 50명이상의 한국인 근무하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다 시피 이런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는 주로 여성인력을 고용합니다.
사람이 한 공간에서 부딛끼면 정이 듭니다. 정이 들면 같이 살기도 합니다. 일부는 그들과 아예 결혼을 했지만 일부는 그녀들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정말 버렸습니다. 어느날 한국에 출장 간다며 떠나서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들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안도 한국인도 아닌 아이들.
인도네시아의 한국부인회와 교회,기업인중 일부가 재원을 각출해 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그녀들과 그녀들의 아이들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지원한다 해도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해 줘야 하며, 남은 사람들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물음에 답을 주어야 하나요?
예, 남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해외에 나와 외로웠고 한국의 가족들은 너무 멀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도망은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혼외정사? 남들에게 순결하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핏줄이 적어도 적정한 교육을 받고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양육비는 지원을 했어애 했습니다.
올해 자카르타와 그 인근 도시의 법정최저 임금은 약 90불이 채 안됩니다. 그 인도네시아의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남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1달에 90불의 생활비 조차도 못 줄 만큼 어려운가요?
그리고 왜? 그 90불도 못 줄 만큼 어렵게 사는 남성들은 그렇게도 많은가요?
더럽고 지저분한 나라 인도네시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라면, 왜 그녀들과 함께 잔건가요? 그녀들을 사랑은 했나요?
어쩌죠? 인도네시아에는 NFL이 없으니, 하인즈 워드가 나올 턱이 없으니, 자랑스런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은 기대하지 않으셔야 할겁니다.
정말 불가피 했다면, 월남전 당시의 라이 따이한이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새롭게 태어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혼혈인의 삶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힘듭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습니다.
전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그들을 사랑했나요? 사랑했다면 떠나고 나서 왜 잊으셨나요?"
그 베트남의 라이 따이한 문제, 이왕 나온 얘기니까 아주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제 경험을 또 끄집어 낼까 합니다.
남자가 외국에서 살면 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전에 한분이 그러시더군요.
"그냥 현지얘 하나 적당히 구해서 살아,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나면 몇푼 주고 해결하면 되지 뭘 그래, 남자가 해외에 살면 그 정도는 여자들도 다 이해해... 총각이 그럴수도 있지..."
그런데 이런 충고(?)를 해 주신 분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월남에만 버려진 아이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카르타 인근에 땅그랑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자카르타의 위성도시인데, 과거 인도네시아로 한국의 신발,섬유,봉재 공장들이 이전 할 때 주로 이곳으로 이전해서 지금도 교민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이미 80년대 부터 이곳으로 한국의 섬유,신발업체들이 이전을 했었습니다.
초기에는 기술자들이 단신으로 부임했습니다. 공장에 직원들에게 기술지도를 해주기 위해 많을 때는 한 공장에 50명이상의 한국인 근무하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다 시피 이런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는 주로 여성인력을 고용합니다.
사람이 한 공간에서 부딛끼면 정이 듭니다. 정이 들면 같이 살기도 합니다. 일부는 그들과 아예 결혼을 했지만 일부는 그녀들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정말 버렸습니다. 어느날 한국에 출장 간다며 떠나서 다시는 돌아 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들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안도 한국인도 아닌 아이들.
인도네시아의 한국부인회와 교회,기업인중 일부가 재원을 각출해 이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그녀들과 그녀들의 아이들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지원한다 해도 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해 줘야 하며, 남은 사람들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물음에 답을 주어야 하나요?
예, 남편들에게도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해외에 나와 외로웠고 한국의 가족들은 너무 멀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도망은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혼외정사? 남들에게 순결하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핏줄이 적어도 적정한 교육을 받고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할 양육비는 지원을 했어애 했습니다.
올해 자카르타와 그 인근 도시의 법정최저 임금은 약 90불이 채 안됩니다. 그 인도네시아의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모든 남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1달에 90불의 생활비 조차도 못 줄 만큼 어려운가요?
그리고 왜? 그 90불도 못 줄 만큼 어렵게 사는 남성들은 그렇게도 많은가요?
더럽고 지저분한 나라 인도네시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라면, 왜 그녀들과 함께 잔건가요? 그녀들을 사랑은 했나요?
어쩌죠? 인도네시아에는 NFL이 없으니, 하인즈 워드가 나올 턱이 없으니, 자랑스런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은 기대하지 않으셔야 할겁니다.
정말 불가피 했다면, 월남전 당시의 라이 따이한이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새롭게 태어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혼혈인의 삶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도 힘듭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습니다.
전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그들을 사랑했나요? 사랑했다면 떠나고 나서 왜 잊으셨나요?"
# by | 2006/02/14 21:58 | 인도네시아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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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부터 먼저 앞서게 되는것 같습니다;;
말하려던 부분의 상당부분을 앤드류님께서 잘 얘기해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