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1일
못생긴 것들은 다 죽어야 해
공포감 조성하는 거문도 길고양이 뉴스 '씁쓸' 에서 트랙백.
고양이는 타고난 사냥꾼이다. 고양이는 주인이 충분한 먹이를 주어도 기어코는 스스로 사냥을 해야만 한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주인과의 교류가 충분치 않다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프랑스 속담이었나? 군인은 개를 좋아하고 예술가는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충성심이 강한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삶을 사랑한다.
그런 고양이를 키울 때 그들의 특성을 제대로 확인도 않고 덜컥 데려와서는 결국 밖으로 내놓아 버린 채 이제와서는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면 그건 자연의 생명들은 무슨 자격으로 세상을 살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섬뜩한 고양이의 눈빛이 그들의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인간이 잔혹하다는 증거가 또 필요할까?
그 뉴스의 멘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우리들의 숨겨진 속내를 잘 나타낸다.
'이쁘면 용서가 되고 잘나가면 허물 쯤은 덮어 줄 수 있어, 못생긴 것들은 없어져야 해, 멍청한 것들은 괴롭혀도 돼'
난 그 고양이의 살기 띤 눈빛보다 그 고양이를 아무렇지 않게 미워할 수 있는 인간의 몰염치가 더 무섭다.
데려와서 돌봐지지 못한채 방치되다 이제는 미움이 되어 버린 섬의 고양이들.
물론 그 고양이들은 섬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와 이제는 삶을 찾아야 하는 고양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70년대 중반 한 영화 때문에 미국의 여름 해변은 텅 빈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상어들은 단지 사냥을 위해 죽어 갔다. 먹기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공포심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죽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자는 그 영화로 인해 벌어진 살육에 통탄함 남은 평생을 백상아리 보호에 나선다.
그가 죠스를 쓴 소설가 피터 벤츄리이다.
살기 위해 본능에 의지하는 고양이와 그들을 데려와 방치하다 이제는 미워하는 인간들. 누가 더 잔혹한 부류일까?
못생긴 것들은 무시해도 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세태가 그대로 반영된 뉴스 한토막.
왜 그들이 그렇게 싸늘하고 기분 나쁜 눈빛으로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자기 반성은 없고, 단지 일단 눈앞에 문제만 치우면 되는 사람들의 인식.
어려운 세상을 살려면 삶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 미워 할 상대가 필요한가 보다 그것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고양이는 타고난 사냥꾼이다. 고양이는 주인이 충분한 먹이를 주어도 기어코는 스스로 사냥을 해야만 한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주인과의 교류가 충분치 않다면 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프랑스 속담이었나? 군인은 개를 좋아하고 예술가는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충성심이 강한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삶을 사랑한다.
그런 고양이를 키울 때 그들의 특성을 제대로 확인도 않고 덜컥 데려와서는 결국 밖으로 내놓아 버린 채 이제와서는 그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면 그건 자연의 생명들은 무슨 자격으로 세상을 살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섬뜩한 고양이의 눈빛이 그들의 혐오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인간이 잔혹하다는 증거가 또 필요할까?
그 뉴스의 멘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우리들의 숨겨진 속내를 잘 나타낸다.
'이쁘면 용서가 되고 잘나가면 허물 쯤은 덮어 줄 수 있어, 못생긴 것들은 없어져야 해, 멍청한 것들은 괴롭혀도 돼'
난 그 고양이의 살기 띤 눈빛보다 그 고양이를 아무렇지 않게 미워할 수 있는 인간의 몰염치가 더 무섭다.
데려와서 돌봐지지 못한채 방치되다 이제는 미움이 되어 버린 섬의 고양이들.
물론 그 고양이들은 섬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억지로 끌려와 이제는 삶을 찾아야 하는 고양이들을 어쩌란 말인가?
70년대 중반 한 영화 때문에 미국의 여름 해변은 텅 빈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상어들은 단지 사냥을 위해 죽어 갔다. 먹기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공포심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죽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원작자는 그 영화로 인해 벌어진 살육에 통탄함 남은 평생을 백상아리 보호에 나선다.
그가 죠스를 쓴 소설가 피터 벤츄리이다.
살기 위해 본능에 의지하는 고양이와 그들을 데려와 방치하다 이제는 미워하는 인간들. 누가 더 잔혹한 부류일까?
못생긴 것들은 무시해도 되는 오늘을 살아가는 세태가 그대로 반영된 뉴스 한토막.
왜 그들이 그렇게 싸늘하고 기분 나쁜 눈빛으로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자기 반성은 없고, 단지 일단 눈앞에 문제만 치우면 되는 사람들의 인식.
어려운 세상을 살려면 삶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 미워 할 상대가 필요한가 보다 그것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 by | 2008/10/11 14:21 | 함께 살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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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쁜것들은 살아야되.
고양이를 좋아한다. 어릴적 우리집 천장에는 고양이 가족이 살고있었고 우리가족의 공공의 적이었던 그 고양이들은 나 혼자 좋아했다. 한번도 고양이를 기를생각은 해본적없지만 지나가는 고양이를 볼때마다 감탄한다. 정말 예쁘구나 하고.그렇지만 기를자신은 없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내가 어떤 책임을 지는것은 두렵다. 예쁜아기를 볼때 아 예쁘구나 하는것하고 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것 하고는 다른얘기다.또 예전하고는 다르게 요즘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more
간만에 들렀더니(;;;;) 괭이관련 글이 올라와있네요^^;;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어디에나 있는 현상입니다만(필요에 의해 데려와서는, 필요없다고 버려버리는), 섬이기에 더욱 두드러진게 아닐까싶습니다.
그래도 재작년보다는 작년이, 작년보다는 올해에 고양이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내용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에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