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3일
분노를 모르는 사람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좀 너그러운 편이다. 양보해도 이미 갖고 있는게 있는데 뭐 아둥바둥하랴.
세상의 아픔의 슬퍼 할 줄만 알고 분노할 줄 모른다면 그 슬픔은 그냥 체념일 뿐이다.
역사의 발전은 아픔을 슬퍼하고 슬픔을 분노로 바꿔 부당함에 맞서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하루종일 배고프다고 백빽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서도 그러한 현실에 분노할줄 모른다면 결국 그의 아이는 계속 배고픈 체로 있어야 한다.
아더 C 클라크의 소설, '2001년 오딧세이'를 읽어보면 그런 분노가 어떻게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말한다.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돌, 아직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간의 조상에게 그 검은 돌은 배부르게 먹은 채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문 워커(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학습을 하고 무리를 조직화 한다.
진열장의 우유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을 보고도 주머니안의 동전만을 세며 아이의 손을 낚아 채, 황급히 나아가야 하는 어머니가 그런 질투심이 없다면 내일도 그녀는 아이에게 우유를 사 먹일 돈을 벌지 못한다.
그 질투심이 에너지가 되어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보다 나은 일거리를 찾아 나가는 것.
그저 무골호인으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우리는 남이 주는 것에 만족한 채 그냥 이세상을 이렇게 내 팽개쳐 둔 채 살아가야 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없는 것에 분노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을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적 사고이다.
그러나 어떤이는 그런 채찍질에 대해 비난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왜 내가 노예처럼 그저 던져 준 하나에 만족한 채 물러서야 하는가? 가장 자본주의적인 이런 행동을 그들은 빨갱이라고 몰아 세운다. 이런 아이러니를 철썩 같이 믿고 자신이 마치 지배자인 양 행세하는 지배자들의 개들.
분노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그냥 슬픔이 슬픔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체념일 뿐이다.
제 몫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삶, 이 가장 자본주의 적인 삶에 대해 빨갱이라고?
미국의 입김에 의해 APEC의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에 의해 죽어가야 하는 농민들,노동자이 빨갱이라고?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적 논리이고 농민이 생업을 이어 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인데 정작 진정한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오히려 제국주의를 선호하는 무리들.
한없이 좋은게 좋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건 삶이 치열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인생에 여유로움이베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분노를 모른다는 것은 곧 슬픔을 그냥 체념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분노가 왜 부당한가?
세상의 아픔의 슬퍼 할 줄만 알고 분노할 줄 모른다면 그 슬픔은 그냥 체념일 뿐이다.
역사의 발전은 아픔을 슬퍼하고 슬픔을 분노로 바꿔 부당함에 맞서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하루종일 배고프다고 백빽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서도 그러한 현실에 분노할줄 모른다면 결국 그의 아이는 계속 배고픈 체로 있어야 한다.
아더 C 클라크의 소설, '2001년 오딧세이'를 읽어보면 그런 분노가 어떻게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말한다.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돌, 아직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간의 조상에게 그 검은 돌은 배부르게 먹은 채 트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문 워커(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학습을 하고 무리를 조직화 한다.
진열장의 우유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의 눈을 보고도 주머니안의 동전만을 세며 아이의 손을 낚아 채, 황급히 나아가야 하는 어머니가 그런 질투심이 없다면 내일도 그녀는 아이에게 우유를 사 먹일 돈을 벌지 못한다.
그 질투심이 에너지가 되어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보다 나은 일거리를 찾아 나가는 것.
그저 무골호인으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우리는 남이 주는 것에 만족한 채 그냥 이세상을 이렇게 내 팽개쳐 둔 채 살아가야 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없는 것에 분노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을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적 사고이다.
그러나 어떤이는 그런 채찍질에 대해 비난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왜 내가 노예처럼 그저 던져 준 하나에 만족한 채 물러서야 하는가? 가장 자본주의적인 이런 행동을 그들은 빨갱이라고 몰아 세운다. 이런 아이러니를 철썩 같이 믿고 자신이 마치 지배자인 양 행세하는 지배자들의 개들.
분노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다. 그냥 슬픔이 슬픔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체념일 뿐이다.
제 몫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삶, 이 가장 자본주의 적인 삶에 대해 빨갱이라고?
미국의 입김에 의해 APEC의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에 의해 죽어가야 하는 농민들,노동자이 빨갱이라고?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자본주의적 논리이고 농민이 생업을 이어 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인데 정작 진정한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오히려 제국주의를 선호하는 무리들.
한없이 좋은게 좋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건 삶이 치열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인생에 여유로움이베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분노를 모른다는 것은 곧 슬픔을 그냥 체념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이다.
내 분노가 왜 부당한가?
# by | 2005/11/23 15:38 | 독백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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